나의 맥킨지 이야기 (12): 간만에 병원 프로젝트가 떴는데…

맥킨지 내부 병원 프로젝트는 별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11월이 되었습니다.

 

이때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점점 심해지던 때였습니다.

맥킨지 내부적으로도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지난번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1년반에 한번씩 사무소 전직원이

가족을 동반하고 다녀오는 Office retreat은 아시아 지역 사무소에서는 무기한 연기 되었습니다.

그리고 Canteen에 비치되어 있던 음료수와 주전부리들의 개수와 종류가 줄어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업무상 출장 시 비지니스클래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준이 새로 생겼습니다.

원래는, 클라리언트 업무로 출장을 갈 때는 목적지와 상관 없이 비지니스클래스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비행거리 4시간 이상일 때는 비지니스클래스, 이하일 때는 이코노미클래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홍콩까지의 비행거리가 3시간 50분이라서 4시간으로 정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이외에 소소한 조치들이 있었지만 다른 일반 회사들에 비해서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이때쯤 이전부터 소문으로만 떠돌던 병원 관련 프로젝트가 시작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직 맥킨지에 입사한 지 만 일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예전 글을 읽은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입사할 당시 맥킨지의 의사 출신 부파트너가

입사 후 일년 정도는 헬스케어 관련 프로젝트를 피하고 이외 산업에 대한 일을 하면서

맥킨지식 일하는 방식에 익숙해 지라는 조언을 받았습니다.)

제가 들어갈 만한 다른 프로젝트가 없었고,

회사 입장에서도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제가 이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의사출신 파트너가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곧 팀장으로 승진할 예정인 고년차 Associate가 JEM으로 팀장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케팅 specialist와 제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중간에 들어가서 적응하느라 애먹기도 하는데

저는 운좋게 입사 후 계속해서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되는 셈이었습니다.

 

프로젝트 팀이 꾸려진 후에는 다른 프로젝트에서와 마찬가지로

팀원들 소개와 함께 자신의 MBTI, 선호하는 일하는 방식 같은 것을 공유하였습니다.

함께 일하게 된 분들이 모두 회사 내에서 무던하고 일 잘한다고 알려진 분들이라서

운이 좋다고 느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주된 내용은 기존에 국내에 없는 형태의 병원을 국내에 짓는 것의 타당성과

적정한 병원 규모를 추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기존에 국내에 없는 형태였기 때문에 국내 자료 조사만으로는 적정 규모를 추정하기 힘들어

설문조사가 필요할 수 밖에 없어서 마케팅 스페셜리스트가 참여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해당병원의 특성을 감안하여 어떤 진료과, 어떤 센터가 들어가는 것이

적절할 지 판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료 이용에 대한 통계자료를 정리하여

향후 병원 이용 수요가 얼마나 되는 지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설문 조사 결과로 나온 소비자의 병원 이용 의향을 더해서

최종적으로 해당 병원에 대한 수요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병원에 대한 프로젝트이지만 병원이 아닌  관련된 제3의 회사가 발주했습니다.

컨설팅 결과에 따라서 해당 사업에 참여하게 될 회사였습니다.

또한, 클라이언트는 아니지만 컨설팅 자체와 연관이 많은 또다른 기관도 엮여 있었습니다.

Stakeholder가 여러명이라 일이 꼬여서 이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컨설팅 회사 입장에서 곤란해 질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주 클라이언트는 외국계 회사로 컨설팅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를 원하지는 않았고

최대한 객관적인 맥킨지의 의견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국내 클라이언트 같은 경우에는 어떤 어젠다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를 프로젝트 팀에 강요하여 관철시키기를 희망하는 경우도 있는데

다행히 주 클라이언트는 그런 조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 클라이언트가 외국 회사였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는 지난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맥킨지 사무소에서 일할 계획이었습니다.

 

맥킨지가 이 건과 유사한 프로젝트를 다른 클라이언트와 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비록 계약상 2년이 경과하면 유사한 프로젝트를 다시 맡을 수 있게 되어있지만

도의적인 문제의 소지는 있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에게는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저희는 클라이언트가 이전 프로젝트 자료를 이용하길 원하는 경우 거절해야하니 그런 요구가 없었으면 했는데

다행히 클라이언트는 프로젝트 팀이 이전의 자료를 이용하지 말고 완전히 새롭게 컨설팅 해주기를 원하였습니다.

실제 프로젝트 팀에도 이전에 유사한 일을 했던 분들은 전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입사하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 저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른 산업에서도 이렇게 복수의 클라이언트와 유사한 프로젝트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네이버 같은 데서 검색해보면 맥킨지가 욕먹는 사례 중에 하나로

동일한 회사를 인수하려는 복수의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를 했다는 것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 클라이언트 최고 경영진과 미리 이야기하여 사정을 설명하여 동의를 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뢰가 생명인 컨설팅 업에서 일이년 일하고 그만둘 회사가 아닌 다음에야

프로젝트 하나 더 따기 위해서 기존 고객과의 관계를 망가뜨린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듭니다.

또한, 이렇게 비슷한 프로젝트가 또 생겼을 때 기존에 그 일을 했던 팀의 파트너들은

프로젝트 정보가 다른 팀에 넘어가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를 시킵니다.

그 정보가 다른 팀에 넘어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자신의 클라리언트와의 관계가 무너질 것이 명백하고,

그렇게 되면 파트너 본인의 회사 내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파트너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confidentiality를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본격적인 프로젝트는 한두주 후에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프로젝트 기간이 8주로 짧은 편이었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상세한 Issue tree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Issue tree는 고객사에게 답해야 하는 포괄적인 핵심 질문을 MECE(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하게

쪼개서 세부 질문으로 나누는 작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MECE는 ‘미씨’라고 읽는데 컨설팅에 관심있는 분들은 익숙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예전 포스팅에서 다룬 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은 안나고 하나하나 찾아보기는 귀찮아서

그냥 한번 더 설명하겠습니다.

Mutually Exclusive란 서로 공통되는 부분이 없도록 쪼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Collectively Exhaustive란 쪼갠 부분을 합하면 정확히 상위 개념이 되어야하고 부족한 부분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들어 ‘어떻게 하면 빚을 지지 않으면서 월말에 더 많은 돈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이슈가 있다면

‘수입의 증대’와 ‘지출의 감소’라는 두가지로 쪼갤 수 있습니다.

수입 문제와 지출 문제는 대개 서로 겹치는 문제가 없으며 (Mutually Exclusive)

‘수입-지출=남는 돈’이기 때문에 수입 문제와 지출 문제를 합하면

그 상위의 문제인 ‘남는 돈’의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Collectively Exhaustive)

 

짐작하시겠지만, 어떤 문제를 MECE하게 쪼개는 데는 수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MECE를 유지하는 것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위의 사례와 같이 두가지 정도로 쪼갤 때는 논리적으로 완전히 MECE하게 쪼개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3~4가지 이상으로 쪼갠다면 쪼갠 것만으로 커버되지 않는 부분이 남거나

서로 겹치는 부분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지 여부이며, 도움이 된다면

약간의 불완전함은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맥킨지에서 팀 회의를 할 때에 가끔은 논리적으로 MECE하지 않다는 것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면 문제 해결에 중요하지 않은 걸 가지고

서로 머리 좋다고 싸움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MECE하게 issue tree를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은

1. 세부 이슈를 하나하나 해결하면 큰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Collectively Exhaustive하기 때문에)

2. 각각의 세부 이슈를 독립적으로 해결해도 무방하며 (Mutually Exclusive하기 때문에)

3. 막연해 보이는 문제를 쉽게 해결 가능 수준까지 쪼개어 어떤 일을 하면 될 지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Issue tree를 상세하게 그리면 업무 계획은 자연히 따라오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와 같이 짧은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경우에는 issue tree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법 많은 시간을 투입한 덕분에 만족스러운 issue tree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함께 일하는 마케팅 스페셜리스트는 설문 조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설문 조사를 위한 준비 작업에 병원과 관련된 input을 주어야 했기 때문에

여러번 내부 회의를 했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

마케팅 스페셜리스트는 자꾸 테크니컬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딴지를 거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그건 당신이 전문가니 알아서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고

마케팅 스페셜리스트는

설문 조사 결과가 프로젝트에 의미있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이런 테크니컬한 부분에 대한

이해를 공유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 회의할 때는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나중에 설문 조사 결과가 나오고 이를 프로젝트에 이용하는 단계가 되니 이해가 갔습니다.

제가 조사한 통계 자료위에 설문 조사 결과 이용하고자 하는 의향을 얹어서 계산해야 하는데

제가 가진 통계 자료에서 나타난 환자 군의 사회경제적 특성과 설문조사 대상 집단의 특성이

서로 다르다면 설문 조사 결과를 이용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었습니다.

통계 자료야 다시 조사하면 된다고 하지만, 설문 조사를 다시 한다는 것은

그동안 작업한 것을 엎고 비용을 다시 지불해야하며, 프로젝트 기간이 연장된다는 점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그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막무가내로 좀 알아서 해달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아마 제가 첫번째 프로젝트 때 그런 전문적인 고려 없이

혼자서 알아서 설문 조사를 진행해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한참 프로젝트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프로젝트 잠정 보류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복잡한 구조로 인해서보류가 된 것입니다.

여러가지 여건으로 보아 취소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모처럼 헬스케어, 그것도 병원과 관련된 일을 하게될 줄 알았는데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리고, 만약 프로젝트가 계속 연기되고

제가 그 동안에 새로 시작되는 프로젝트에 배치되면

이 건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는 지라 안타까웠습니다.

 

연말에 새롭게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들었기 때문에

이제 제안서 쓰고 하다가 연말 office closure를 맞이하겠구나 싶었습니다.

office closure는 크리스마스 경부터 신정연휴까지 회사 문을 닫고 전직원이 휴가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맥킨지와 같은 외국계 회사들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이나 유럽쪽 사무소들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큰 명절이다 보니 보통 이 시기에 문을 닫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역 사무소도 모두 함께 문을 닫습니다.

12월 연말 기간이 포함되는 컨설팅 프로젝트가 있으면 계약할 때, 연말 일주일간은 제외하고

계약을 맺는다고 들었습니다.

컨설턴트들은 프로젝트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사이 기간이 아니면

휴가를 쓰기가 힘듭니다.

프로젝트가 갑자기 연장되는 경우도 있는 등 여러가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휴가를 갈 지 미리 정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연말에 일주일을 잡아서 모든 직원이 무조건 쉬는 시스템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컨설턴트들이 연말 휴가는 미리미리 준비해서 평소 쉽게 다녀오기 힘든 곳으로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아, 물론 연말 휴가는 각 개인의 휴가 기간에서 제외되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Staffing(컨설턴트를 프로젝트에 배치하는 것)이 왔습니다.

공기업이 클라이어트이고 크리스마스에 끝날 예정으로 3주 정도 남았는데

막판에 사람이 부족하다는 요청이 와서 제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어차피 병원 프로젝트는 해가 바뀌고서 시작될 예정이었고

이렇게 생소한 비지니스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흔쾌히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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