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적자나는 진료과는 없애야 하는가?: 비용에 대한 이해

제가 예전에 일했던 병원에서는 원가 회계의 방법으로

Activity Based Costing(ABC: 활동 기준 원가)라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진료 활동에 대해서

거기에 들어간 재료비를 구하는 것은 물론 (이건 간단하지요)

교수, 전공의, 간호사, 의료기사가 사용하는 시간을 감안해서

인건비가 얼마나 들어가는 지 계산하여 배정하고,

전기/수도 요금, 의료기기 비용 등을 일일이 계산하여 배정합니다.

즉, 어떤 진료 활동이 있으면 그로 인한 매출이 얼마고

인건비는 얼마가 들어가고, 각종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 지를 알 수 있어

그로 인한 이익이 얼마인지까지 바로 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같은 수술이라고 해도 수술 시간이 다르고 여러가지 여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 경우마다 정확하게 비용을 산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가지 가정을 써서 대략적인 것을 계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 진료 행위마다 매출, 비용, 이익이 계산되기 때문에

각 교수별 혹은 경영자가 보고 싶은 기준에 맞추어 이익을 구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병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형 병원들이 이런 ABC 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해당 병원 경영자들이 경영 판단을 내리는데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됩니다.

 

이런 자료는 굳이 개별 의료진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지만

본인이 원하거나 여러가지 특수한 사정이 있을 때 제한적으로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있었던 병원이 기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자료를 공개하고 의료진을 닥달할 것 같지만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제가 그만둔 후에도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의료 여건 상 많은 교수님들이 적자를 보는 것으로 나옵니다.

열심히 환자를 본 교수님들은 충격을 받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격은 분노로 변하기도 하는데, 그 분노는 건강보험공단으로 향하기보다는

그 자료를 만든 실무자에게로 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자료를 만든 기준은 뭐냐, 나는 하루 종일 외래 진료 하는데 내가 왜 적자냐 등등

많은 말씀을 하십니다.

회계하는 사람들이 일저한 가정을 가지고 작업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기는 합니다.

각 수술에 투입되는 인력 종류 및 각 인력이 소요하는 시간은 그때마다 측정할 수가 없기때문에

ABC 시스템을 처음 만들 때 각 과 교수님들에게 일일이 물어가면서 기준을 만듭니다.

예를들어 연배가 높은 교수님들은 수술을 할 때에 젊은 교수가 보조하거나

여러명의 전임의, 전공의가 보조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젊은 교수님들은 같은 수술을 할 때에 기껏해야 전공의 한두명만 데리고 수술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하지만 각 진료과에서 그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대개 알려주지 않지요)

그런 차이는 반영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젊은 교수님들의 수익성이 실제보다 나쁘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해당 과에서 해준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에

애꿎은 회계경리 담당자를 탓할 일이 아닙니다.

아마, ABC를 만들 때 해당과 교수님을 찾아가면 바쁘다고 대충 답한 경우도 많을텐데

그 업보인 셈입니다. 아마 건강보험 수가를 만들 때에도 비슷한 일들이 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찌되었건, 병원 내부 회계의 경우에는 건강보험과는 달리

현실과 다른 부분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억울하다면 그 기준을 알아보고 현실과 어떻게 다른지 조사하여 개선을 요구하면 됩니다.

 

분노하던 교수님이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나면 다음으로는 보통

내가 진료하는 게 적자라면 진료를 줄이거나 아예 안하는게 병원에 이득이겠네?

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고정비용와 변동비용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 오해입니다.

 

고정비용은 생산량에 무관하게 일정한 비용을 말하며, 변동비용은 생산량에 따라 변화하는 비용을 말합니다.

병원에서 설치한 CT나 MRI는 얼마나 많은 검사를 하는 지에 상관없이

기계값이 일정하기 때문에 고정비용입니다.

검사를 시행할 때마다 사용해야하는 시약 같은 것은 변동비용일 것입니다.

레이저 등 일부 의료 기기의 경우에는 사용량에 따라 제조사에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도입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변동비용이 됩니다.

 

인건비 같은 경우는 좀 애매합니다.

예를들어 CT를 찍을 때 최소 한명의 방사선사는 있어야 하고 이 방사선사가 낮에 8시간 동안

검사를 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낮시간 동안에만 CT 검사를 한다면 이는 고정 비용입니다.

그런데 시기에 따라서 CT 예약이 폭주하는 때가 있다고 할 때

이때 한명의 방사선사를 고용하여 밤 근무를 하도록 한다면 이는 고정비용이 될 것이며

기존 방사선사들이 시간 외 근무를하고 이에 따른 수당을 받거나

파트타임 방사선사를 사용한다면 변동비용이 될 것입니다.

 

의사는 어떨까요

대학병원의 교수라면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인건비는 병원입장에서

고정비용입니다.

요즘 부쩍 늘어난 임상교수는 대부분 계약직인 경우가 많아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

재계약을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변동비용으로 보아야 합니다.

물론 대학병원이 망해서 아예 문을 닫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교수 인건비도 변동비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에 안과 라식 수술에 대해서 다룬 포스팅에서 비슷한 내용을 설명하였습니다.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사업을 지속할 지 중단할 지를 결정할 때,

고정비용은 사업의 지속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들어가는 비용이기 때문에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닙니다.

변동비용보다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남는 돈으로 고정비용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그렇다면 적자를 보는 교수님은 진료를 하지 않는 것이 병원에 이득일까요?

정답은, 교수님이 진료를 통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변동비용보다만 높다면

계속 진료를 하시는 것이 병원에 이득입니다. (변동비용보다 낮은 돈을 버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리고 진료를 더 많이하면 변동비용을 빼고도 남는 돈이 더 많아 지기 때문에

적자는 더 적어질 것입니다.

 

대학병원에서 어떤 과의 진료는 다른 과의 진료와 밀접하게 연관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렇게 그 진료과의 매출과 비용만 가지고 따질 문제가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병원 입장에서 순수하게 경제학적인 요인만 고려하자면

운영비용도 벌지 못하는 진료과는 정년퇴직하는 교수님을 대체할 교수 발령을 내지 않는 등

그 규모를 최소화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운영비용보다는 많이 벌지만 전체적으로 적자인 과는 현재 규모를 유지하거나

계약직 직원을 재계약하지 않는 방법으로 규모를 축소하고

신규 투자 (의료 장비는 물론 신규 교수진 채용)는 하지 않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결정입니다.

 

순수하게 경제학적인 이야기이지만

저와 동년배, 후배 및 가까운 선배들이 아직 상당 수

위에서 이야기한  ‘계약직 직원’에 해당되기 때문에 씁쓸한 뒷맛이 남습니다.

예전에 일할 때, 교수님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답답했던 기억이 나서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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