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병원은 어떻게 1위가 되었는가?: 마케팅 포지셔닝

도발적인 제목 때문에 언짢은 분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국내에서 대형 병원 순위를 이야기할 때 적어도 공개 석상에서 1위 병원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Big4 병원 모두 훌륭한 수준을 갖추었으며 다양한 외부 기관이 실시한 평가에서

Big4병원들이 1위를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들 훌륭한 병원이기는 하지만

의사나 기타 의료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그중 어느 병원이 1위냐고 물어보면

많은 분들이 아산병원을 꼽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제가 레지던트를 시작하던 2000년대 중반까지는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이 Big4 병원의 수위를 차지하였으나

이후부터 아산병원이 1위로 치고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1989년에 개원하여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역사와 전통에 미치지 못하는

아산병원은 어떻게 1위로 올라설 수 있었을까요?

 

이전에 마케팅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다루었던 포지셔닝으로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포지셔닝에 대해서는 마케팅의 STP를 설명하는 지난 포스팅에서

간단히 다룬 바 있습니다.

 

네이버의 두산백과에 따르면 포지셔닝이랑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자사 제품의 바람직한 위치를 형성하기 위하여 제품 효익을 개발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잭 트라우트와 앨 리스가 도입한 개념으로 같은 이름으로 나온 책은

마케팅의 고전으로  손꼽힙니다.

 

포지셔닝을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과 경쟁업체 대비 우리의 장점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경쟁업체 대비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잘 충족시킬 수 있는

우리 제품의 위치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Big4병원들의 포지셔닝은 어떤 것일까요?

옛날부터 나오던 이야기 중에

‘서울대병원에서 진단받고, 아산병원에서 수술하고 삼성병원 장례 치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세병원의 포지셔닝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풀어서 생각해보자면

서울대병원에서 진단을 받는다는 말은

국내 최고의 의과대학을 두고 있기 때문에

내과, 외과 등 환자를 직접 보는 과 뿐만 아니라

영상의학과, 진단검사의학과, 핵의학과 등 진료 지원을 하는 과가

잘 갖추어져 있어서 자칫 소홀할 수 있는 진료 지원 기능까지

충실하게 갖추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아산병원에서 수술한다는 말은

간이식, 심장 시술 등 복잡한 시술, 수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서 노력을 했으며

다른 병원들에 비해서 빠르게 규모를 키우면서

많은 환자를 보게되었고 매우 드문 사례까지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어서

수술을 잘 하는 병원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삼성서울병원은 개원 당시부터 의료 문화를 바꾸는 병원을 표방하여

시설과 서비스에 많은 투자를 하였고

서비스가 좋은 병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포지션을 가진 세 병원 가운데

아산병원이 1위를 차지하게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아산병원의 포지션이 의료에서 소비자나 의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하는

속성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서울대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의 포지션이

비교적 쉽게 따라잡을 수 있는 속성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MRI, PET 등 첨단 의료 장비들이 나오고 많은 검사들이 자동화 되었기  때문에

서울대병원이 내세운 우수한 진료 지원 역량은

좋은 장비를 구입함으로써 극복 가능한 포지션이 되었습니다.

 

삼성서울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Big4병원들 보다 늦게 개원해서 후발주자라는 핸디캡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병원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포지션인 ‘의료에서의 서비스’를

택한 것은 기존의 판을 깨기 위한 우수한 전략이었습니다.

실제 삼성서울병원은 어렵지 않게 Big4의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비스나 시설은 투자를 하면 따라갈 수 있는 속성이라는 점입니다.

삼성서울병원에 이어 다른 병원들도 앞다투어 시설을 개선하고 서비스 문화를 이식하였습니다.

그 결과 Big4의 다른 병원들도 삼성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아산병원이 내세운 수술 잘하는 병원이라는 포지션은

극복이 쉽지가 않습니다.

명의 몇명을 영입한다고 해서 쉽게 달성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게다가 아산병원은 규모 확장을 선도하면서

다른 병원들보다 더 많은 환자를 보고 수술을 하면서

드문 사례에 대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수술 잘하는 병원이라는 포지셔닝은 점점 난공불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들은 Big4병원 가운데

세브란스의 포지션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혼자서 아무리 고민을 해도 떠오르지 않아서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는 분들이나

주위에 병원 경영에서 인정받는 분들께 질문을 했는데

공통된 반응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한분께서는 어느 한분야 1등을 하지는 못하나

전분야에 걸쳐서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한다는 것이 장점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포지셔닝의 유명한 사례 중에

미국 렌터카 업계에서 만년 2위였던 에이비스가

스스로 2위임을 인정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한다는 광고를 하면서

높은 성장과 이익을 거두었다는 사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세브란스병원에 계신 분들이 여기에 동의하시지는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산병원 이외의 병원은 어떤 전략 혹은 포지션을 택해야 할까요?

우선 1위 업체와 동일한 포지션을 택하고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아산병원이 수술잘하는 병원으로 자리 잡은게 사실이라면

웬만한 노력으로 이를 뒤집는 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서울성모병원 원장님께서 취임할 때

‘수술 잘하는 병원 옛 명성 되찾겠다’고 하신 것

그리 좋은 전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병원 수술 결과가 아산병원과 비슷하거나 더 좋다’고

주장함으로써 아산병원보다 좋은 병원으로 인정받겠다고 하는 것은

포지셔닝의 관점에서 어려워 보입니다.

예를들어 현대자동차의 하드웨어 사양이 같은 가격대의 BMW 자동차와 비슷하거나

미국 소비자 단체 잡지인 Consumer report가 현대차에 BMW보다 더 좋은 점수를 주었다고 해서

현대차가 BMW를 눌렀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아산병원 이외의 병원이 택해야 하는 전략은

아산병원이 차지한 ‘수술 잘하는 병원’이라는 가치 이외에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제 우리병원이 잘하는 가치를 찾아내서 그 가치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정답이 아닐 지 모르겠지만 의료에서 중요한 분야임에도

어떤 병원도 잘한다고 내세우지는 못하는 뇌신경 분야를 잘 보는 병원 같은

포지션도 생각해 볼 만합니다.

 

이때 실제 갖추고 있지 못하면서 있어보이는 가치를 적당히 택해서

우리의 포지션이라고 포장해서는 안됩니다.

소비자들은 현명하기 때문에 역량 없이 포장만 한 것을 결국은 알아낼 것이며

한번 그런 일이 생기고 나면 아무도 그 병원이 포장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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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1.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산병원의 미래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가톨릭의대 설립초기와 닮아있는 부분이 많아보이기 때문입니다. 경성의전 출신들 중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출신에게 밀려난) 실력이 뛰어난 분들을 대거 모셔와서 단박에 최고병원대열에 합류했었습니다. 이후 가톨릭의대 출신이 병원을 장악하면서 학계에서 포지셔닝이 뒤로 밀려난 부분이 분명 있다고 봅니다. 마찬가지로 울산의대출신교수들의 병원내 역량이 커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일일텐데 1위를 어떻게 유지해 나갈지 사뭇 궁금합니다.

    •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긴 time frame을 가지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울산의대 규모가 작다는 것이 차이를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의대, 가톨릭의대에 비해 규모가 작으니 그렇게 될 가능성은 좀 낮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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