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고용 상황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지난번에 쓴 의사들의 고용 상황 변화  포스팅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요양병원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거나 줄기 시작하고,

신규 개원의사 뿐만 아니라 기존 개원의사들의 여건이 나빠져

더 이상 새로운 의사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면

의사들의 경제적인 상황은 빠른 속도로 악화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실제로 어떤 일이 생길지 구체적으로 알기는 힘들지만 그 단서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난 포스팅을 읽은 분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3년간 늘어난 요양병원 수가 350개 정도이고 각 병원마다 4~5명 정도의 의사를 고용한다고 하면

요양병원에서 매년 450~600명 씩 의사를 신규 고용했다는 이야기인데

의사 수가 십만명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이정도 자리가 일자리가 줄어드는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수요, 공급 곡선에서 어느 한쪽 곡선이 조금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수입이 조금 줄어드는데 그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급 곡선의 큰 전제는 가격(=의사의 수입)이 떨어지면

제품의 공급(=의료 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의사의 수)이 감소한다는 것인데

의사의 수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사는 의과대학 6년, 인턴/레지던트 5년, 남자 의사의 경우 군의관 3년해서

11~14년을 거쳐서 30대 초중반에 전문의가 되어 의사로서의 활동을 하게됩니다.

따라서

1. 의사로서의 수련에 투입한 기간이 길어서 쉽게 다른 일을 생각하기 힘들고

(사실 이는 Sunk cost이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아야 하는 부분이지만 그러기 쉽지 않습니다.)

2. 긴 수련 과정에서 위험 회피성향이 강해져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며

3.  30대를 훌쩍 넘어선 나이가 부담스러워서 수입이 약간 감소했다고

의사 일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알아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 나이에 알아 볼 수 있는 다른 일 자체가 많지 않습니다.

정확히 어느정도라고 이야기하기는 힘들겠지만 수입이 크게 감소하기 전에는

의사를 그만두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가격(=의사의 수입)이 상당히 많이 떨어질 때까지는

제품의 공급(=의료 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의사의 수)는 거의 감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들의 일자리 수가 미약하게라도 줄기 시작하면 이렇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이를 추정하기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해서

제가 그동안 읽었던 경영 서적 가운데 단연코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코피티션(Co-opetition)에

나오는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게임이론에 대한 내용인데 간단한 카드 게임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담이라는 교수가 학생 26명과 카드 게임을 합니다.

아담은 26장의 검은색 카드를 갖고, 학생들에게는 빨간색 카드를 1장씩 나누어 줍니다.

아담은 260만원을 상금으로 걸고,

‘검은색 카드 1장과 빨간색 카드 1장을 한 쌍으로  내놓는 사람 -자신이든 학생이든 간에-

은 누구나 10만원을 가질 수 있다’고 제의합니다.

이때 검은색과 빨간색 카드의 짝을 맞추기 위해서

아담과 학생간에는 자유롭게 협상을 할 수 있으나 학생들은 단결해서 그룹을 이루어

아담과 협상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때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게임을 해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아담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고 학생은 불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학생 입장에서 보면 아담이 거래에 필요한 모든 카드를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먼저 아담이 학생 A에게 그의 카드를 2만원에 사겠다고 제의를 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학생은 아담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어 보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싶겠지만

거절하고 일단 지켜본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나머지 25명과 한 사람씩 계속 거래를 하고, 마지막에  다시 학생 A를 찾아옵니다.

아담에게는 아직도 검은색 카드 한장이 남아있고, 학생 A에게도 빨간색 카드 한장이 남아있습니다.

이때, A가 아담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담도 A를 필요로 합니다.

A와 아담은 이제 완전히 대등한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이 거래에서는 A와 아담이 5만원씩 나누어 가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즉, A는 기다림으로써 빨간색 카드를 5만원에 팔 수 있게된 것입니다.

기다리기만 하면 5만원에 팔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5만원에 팔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도 A와 똑같이 할 수가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학생들도 5만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얼핏 보기에 아담이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이지만

각각의 거래가 성가되기 위해서는 학생이 아담을 필요로 하는 정도와

아담이 학생을 필요로 하는 정도는 똑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베리라는 교수가 똑같은 게임을 하는데 다만 베리는 23자의 검은색 카드만을

가지고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검은색 카드 1장과 빨간색 카드 1장을 한 쌍으로  내놓는 사람은 10만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전체 상금은 230만원이 되어 위의 경우보다 전체 파이는 작아집니다.

다시, 베리가 학생 a에게 그의 카드를 2만원에 사겠다고 제의를 한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때, 학생은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위에서 처럼 일단 거절하고 지켜보는게 좋을까요?

 

위에서 아담의 경우에는 26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래를 모두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26명의 학생 전원을 반드시 상대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학생 A는 아담의 첫 제의를 거절하더라도, 그가 반드시 찾아오리라는 생각은 옳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베리는 학생 수보다 적은 23장의 카드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3명의 학생은 남게 되어 있습니다.

즉, 학생 a가 베리의 조건을 거절하는 경우 베리는 뒤돌아 설 것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학생 a뿐만 아니라 26명의 학생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베리가 내세우는 조건을 거절하는 학생은 한 푼도 건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협상 때마다 학생들은 굴복하게 됩니다.

‘운이 좋은’ 학생 23명은 2만원을 받고, 나머지 3명은 아무 것도 못받는 결과가 빚어지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23명의 학생은 단 돈 만원 혹은 그보다 적은 돈을 제시받아도 받아들일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은 베리가 어떤 제안을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위의 아담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아담은 총 260만원의 50%를 벌 수 있었던 반면

베리는 총 230만원의 80%, 더 나아가 90%를 벌 수 있어 아담 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상대보다 몇장의 카드가 적은 것만으로 협상력이 월등하게 올라간 것입니다.

 

이것이 그냥 카드 게임 이야기일 뿐일까요?

최근 수년간 여러 진료과의 부침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 카드게임의 원리가 적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의 변화 혹은 수급 상황의 변화에 따라

특정 진료과의 의사 수가 적정 수준보다  조금이라도 적어지면 몸값이 크게 오르고

조금이라도 많아지면 수입이 심각하게 감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정 진료과를 넘어서 전체 의사 수를 놓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담과 베리는 의료시장 고용주이고 학생은 의사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최근까지는  의료시장에서 의사를 구하고자 하는 수와

일자리를 구하는 의사 수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고

이때의 고용주는 아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의사를 구하고자 하는 수가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면 이때의 고용주는 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향후 요양병원이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던지 해서

병원 수가 별로 늘지 않으면 의사들의 임금 협상력은 급속도로 악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의사들의 수입이 감소하는 정도를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위에서 베리와  학생간의 게임을 생각해보면

이럴 바에야 의사 일 안하고 다른 일을 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수준까지 급속하게 나빠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때 의사에게는 대안이 있습니다.

더 이상 고용주와 거래하지 않고 개업을 하는 것입니다.

논의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서 미용, 성형 등 비급여 영역을 제외하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개원 의사들이 점점 늘어나면

이번에는 의원급 의료기관에 지급되는 건강보험 급여액 규모와 개원 의사들 숫자간의 관계가

쟁점이 됩니다.

이 관계는 위에서 살펴본 카드게임과는 다르게 작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건강보험 급여액은 (의사에게 만족스러운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지급 방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위의 카드게임처럼 개원 의사 숫자가 늘어난 것을 이용해서

실질적인 협상을 할 수는 없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개원 의사 수가 늘어나게되면 그들의 수입은

고용주와 거래할 때보다 천천히 감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다시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1. 신규 개원 의사는 기존 개원 의사에 비해서 입지가 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능력이 월등해서 주위에 이미 개원한 의사들의 환자를 끌어들일만한 의사들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기존 개원 의사가 이미 확보한 환자군을

신규 개원 의사가 끌어들이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병원 고용 시장에서 개원 시장으로 빠져나가는 의사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기

힘들 수 있습니다.

 

2. 여자 의사 수가 크게 늘어났고, 의전원 제도로 인해 나이가 많은 신규 의사가 늘어나

개원을 꺼리는 의사 수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즉, 개원으로 빠져나가는 의사들의 규모와 그들이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요양병원을 비롯한 병원의 수가 늘어나는 폭이 줄어들어

의사들의 경제적 협상력이 약해지면 의사들의 경제적 여건이 급속도로 나빠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더 많은 의사들이 개원을 택하게 되면서 경제적 협상력이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겠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위의 카드 게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거래 상대보다 단 한장의 카드만 적게 가지고 있어도 협상력은 압도적으로 높을 수 있기 때문에

‘적정 의사 수’ 대비 의사 수가 조금만 늘어나도 의사들의 경제적 여건은 빠르게 나빠질 수 있습니다.

 

물론, 전공 진료 과목이나 거주 지역 등 상황의 변동에 따라 쉽게 바꾸기 힘든 변수들에 따라서

경제적 여건이 변하는 정도는 다를 것입니다.

예를들어,  최근에 재활의학과가 뜬 이유 중 하나는 요양병원 숫자 증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수가 제한이 심한 요양병원에서 행위별 청구가 가능한 전문 재활 치료는

중요한 수익원이기 때문에 재활의학과 전문의를 많이 뽑았기 때문입니다.

반복적으로 이야기한 것처럼 요양병원 수 증가가 정체되거나

수가 제도가 변해서 요양병원에서 재활 치료가 지금만큼 인정되지 못한다면

재활의학과의 상황은 빠르게 나빠질 수 있습니다.

(참고로, 한방 치료 역시 요양병원에서 행위별 청구가 가능한데

이로 인해 한의사들의 상황 악화가 멈추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또한 ‘적정 의사 수’가 어느 정도인지를 사전에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듭니다.

따라서 위에서 제가 생각한 일이 언제 일어날 지를 미리 알기는 힘들며

상당한 변화가 발생한 이후에야 뒤늦게 알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혹은 1~2년 내에 그 시점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이 글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향후 의사들의 경제적 여건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Comments

comments

4 comments

  1. 좋은 포스트 감사합니다. 의대생으로서 “의사들 좋은 시절 다 갔다”는 소리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어보니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미래가 두렵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다가오는 미래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의학지식을 묵묵히 쌓고, 의사로서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 최선일까요? 아니면 지금이라도 전에 관심있던 분야로 전공을 옮기는 것이 옳을까요.. 우문현답을 부탁드립니다.

    • 의사로서 나아갈 길이 많이있습니다.지금 전공을 옮기는것보다 더 폭넓게 생각 해보세요.

    • 저도 답은 없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의사로서의 실력을 키우는 것은 기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여기에만 묻혀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병원 밖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의사들도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 제공자의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자신을 알리고 (=마케팅), 직원을 잘 관리하고 (=조직 관리), 운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 (=operation management)에 대해서 고민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경제경영 서적 가운데 관심이 가는 것들을 읽는 것으로 시작하시고
      거기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양한 책을 읽고 고민해야할 것 같습니다.

    • 답글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너무 안일한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합니다.
      의학의 길에서 도망가기 보다는 끊임없이 정진하여 보다 더 넓게 공부해서
      다가오는 미래에 대처해야겠습니다.
      두 분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