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의료의 이슈: 사용성 문제

블로그에는 가급적 고민한 결과물을 올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읽은 책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서 나중에 참고할겸

관심있는 분들에게 도움도 될 겸해서 간단하게 올리려고 합니다.

책 제목은 Clinical Decision Support Systems이며 이름 그대로

임상 의사 결정 지원 시스템 (CDSS)에 대한 내용입니다.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인이 진료 현장에서 일하는 과정을 돕는

여러 시스템이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환자 데이터를 보고 우선적으로 고려할만한 진단명 리스트를 제시해줄 수도 있고

약물 처방 시 오류를 지적해 줄 수도 있습니다.

최근 핫한 인공지능 역시 결국 여기에 포함됩니다.

다만, 영상 판독 시스템은 보통 Computer Aided Detection (CAD)라는 별도의 카테고리로 보고

이외의 경우를 CDSS로 보는 것 같습니다.

굳이 의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을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CAD는 이료 영상 정보 시스템 (PACS)와 관련된 것으로

CDSS는 전자 의무 기록 (EMR)와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EMR과 별도로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CDSS (예를 들어 유전체 분석 기능)도 있기는 합니다.

 

책에 많은 내용이 있지만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CDSS의 사용성(Usability) 문제입니다.

인공지능이 CDSS의 형태로 의료 현장에서 쓰기 위해서는 어떤 interface를 통해야 할 것인데

현재 의료 현장에서 대표적인 interface인 EMR이 워낙 후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빡쳐서 전산 담당 직원 불러서 EMR 회사 xx들 이거 제대로 안고치면

회사에 불지르러 간다고 전하라고 말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의료 인공지능이 본격저긍로 개발되었을 때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EMR을 통해서 사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그렇다면 후진 EMR이 인공지능의 잠재력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룬 CDSS의 사용성 관련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CDSS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매우 오랫동안 이루어져 왔지만

약국이나 보험 청구 같은 영역에서 제한적인 성공을 거두는데 그친 것으로 평가됩니다.

여러가지 이슈가 있겠지만 사용성 문제가 중요한 이유로 꼽힙니다.

자동차, 항공, 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성은 중요한 이슈로 간주되지만

EMR과 CDSS에서는 관심 부족과 효율적인 디자인, 평가 틀의 부재로 인해

잘 활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CDSS의 사용성과 관련된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배경에서 업무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이고 구체적으로

사용자가 놓치거나 잘못 해석한 것을 지적해 주거나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될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언급되는 것이 알림 피로  (Alert fatigue) 입니다.

글자그대로 의료진에게 너무 많은 알림이 전해지면서 피로를 느끼게 되고

결국 둔감해져서 알림을 무시해 버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결과, 환자에 위해가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자동 항법 장치를 사용하는 비행기 조종에서도 알림 피로가 문제가 되는데

알림을 최소화 하여 가장 중요한 것만 파일럿에게 전달한다고 하여

중요성이 떨어지는 알림으로 인해 주의가 분산되는 것을 피한다고 합니다.

 

또 한가지 고려해야 하는 것은 CDSS가 업무 흐름으로 통합되어서

의료진의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원래 하던 일에 더해서 CDSS에 데이터를 입력해야 한다거나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면

안그래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의료진이

안쓰고 마는 결과가 생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의료진의 업무 방식이 병원마다, 개인마다 매우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업무 흐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에 맞춘 CDSS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알림 피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다른 곳에 나와있는 내용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 구체적인 알림을 보낼 것: 예를 들어 어떤 약물을 쓰라고 제시할 때 종류로 제시하지 말고

개별 약물로 제시하라

2. 중증도에 따라서 알림 수준을 차등화 하고 그에 따라 제시하는 방법(색깔, 신호)을 다르게 하라

단, 어떤 종류의 신호를 중증도가 높은 것을 의미하는 지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있는 것이 아니다는

점때문에 시행하기는 까다롭다

3. 중증도가 높은 알림만 기본 알림 모드에 들어가도록 하라. 중증도가 낮은 것은 업무를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시하라

4. 알림을 디자인할 때 human factor를 고려하라: 형식, 컨텐츠, 가독성, 색깔 등

5. 알림에 환자의 특성을 반영하라: 예를 들어 해당 환자의 검사 결과가 알림에 반영되도록 하여

환자 맞춤형 알림을 주도록 하라.

6. 의사별 맞춤 알림을 제시하라. 전공이나 의료 수준에 따라서 알림을 제시하라. 예를 들어

신장내과 전문의이면 약물의 신독성에 관한 내용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단, 이 경우 알림이 진료에서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당장 현장에 적용할만큼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기본 원칙으로 염두에 둘만해 보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현재 의료인들이 익숙하게 쓰고 있는 EMR이라는 interface가 워낙 후지기 때문에

앞으로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도입될 때 큰 이슈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EMR이 개선되거나 EMR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interface가 나와야할 텐데

둘다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 이유는 이미 의료진이 기존 EMR에 익숙해져서 욕하면서도 계속 쓸 가능성이 높아보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QWERTY 자판이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EMR 업체들의 경우 이런 상황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에도

굳이 큰 돈 들여서 EMR을 업그레이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회사들에 빡친, 컴퓨터를 아주 잘하는 의사들이 ‘의사를 위한’ EMR을 만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만든 분과 주위 몇몇 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안쓰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를 EMR 업체만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의사들이 가격에 예민해서 더 좋은 EMR에 큰 돈을 쓸 의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의 근본 원인이 의사의 낮은 지불 의향인지 아니면 낚은 물고기에 먹이 주지 않으려는

EMR 업체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이 요인들이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Interface를 개선하는 것은 결국 업체의 몫이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엉뚱한 이슈가 제기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알림 피로와 같은 일이 누적되면서 의료진이 현장에서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통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놀라운 수준으로 발생하여 이런 상황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환자 안전에 있어서 가장 큰 위험 요인이 인간 의료진이 되어

차라리 진료 과정에서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 환자 안전에 도움이 된다고

보게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도 듭니다.

모쪼록 인공지능 자체의 발전 못지 않게 interface가 함께 발전되어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Comments

comments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