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보직 교수: 더 좋은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삼성서울병원에서 2년 반 일하면서 보직 교수님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있었고

맥킨지에서 혹은 그 전후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 이외의 다른 병원 보직 교수님들을 접할 기회가

좀 있었습니다.

다들 훌륭한 의사이고, 연구자이시자만 보직에 걸맞는 좋은 관리자가 되지는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제 생각에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보직 교수들이 좋은 관리자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일반 기업의 경우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대리, 과장, 차장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실무자로서의 경험, 중간 간부로서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기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꼼수를 쓰는지 환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효율적인 관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 교수님들의 경우 시키는 일 다하는 전공의, 전임의 혹은 주니어 교수들을 관리해 본 경험 밖에 없어

보직 교수가 되어서 행정 직원들을 이끌기위한 준비가 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보직 교수님들과 함께 일하면서 아쉽다고 느낀 부분들을 적어볼 까 합니다.

 

1. 보직 교수는 조직의 관리자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분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이는 보통 둘 중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번째 모습은 본인의 정체성은 의사일뿐 관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제가 함께 일했을 때는 매우 좋은 보직자로 평가받는 교수님이 계셨는데

이분이 이전에 처음으로 다른 부서의 보직자로 발령받았을 때의 일을 들었습니다.

보직을 맡고 직원들과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분이 제일 처음 하신 말씀이

‘나는 무엇보다도 환자 보는 의사다.

이 부서의 보직자로 일하는 것은 나에게는 우선 순위가 떨어지는 일이다’ 였다고 합니다.

병원 경영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관리자가 하기에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던 분이 보직자 생활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제가 그분 밑에서 일했을 때는 더 중요한 부서의 부서장이셨는데

이미 훌륭한 관리자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많은 의사들 특히 교수님들이

좋은 관리자가 되는 것, 즉 어떤 경영 활동이 진료를 방해하고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좋은 경영은 궁극적으로 좋은 병원을 만들기 위함이며 이는 결국 진료하는 의사와

환자들에게 이익이 됩니다.

 

그런데 보직을 수락하고 맡으실 정도의 교수님이면 보통 이정도는 잘 이해하고 계십니다.

그러다가 또다른 형태로 좋지 못한 관리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번째 모습은 본인의 역할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직원들이 일할 건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정말 많이 봤는데, 보통 본격적인 보직을 맡기 전에도 병원이 이런저런 것을 하면 좋아질 것이다는

생각이 많으시고, 원내 각종 회의에서 그런 의견을 피력하면서

병원의 주요 경영자 분들의 관심을 받고, 보직자로 임명받게 됩니다.

보직자로 임명을 받으면 본인의 아이디어를 잔뜩 늘어놓으면서 그에 대해서 일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고 나서 진료 때문에 바쁘고, 의사인 본인은 실무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그 일이 진행되는 과정은 외면합니다.

 

아이디어만으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자료를 모으고 기획안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해서

원내 관련 부서를 만나고 설득하고, 관철시키고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내는 것 못지않게 혹은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일이 잘 진행되는지, 진행되지 않는다면 무엇이 부족해서 인지를 파악하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야합니다.

 

제 경험으로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 흔한 이유는

1) 실무진이 결정하기 힘든 부분이 있을 때 이에 대한 가이드가 필요한데 보직자가 이를 신경쓰지 않는 경우

 

2) 원내 다른 조직-특히, 의사가 아닌 행정직이 관리자인 조직-과의 협조를 얻어내지 못할 때,

이를 풀어줘야하는데, 관리자가 그럴만한 역량이 부족하거나 이를 외면하는 경우 입니다.

많은 교수 보직자들은 기획 작업에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서 본인의 역할을 끝내고

이런 더 중요한 뒷과정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직원들이 통 움직이려고 하지를 않기 때문에 내가 나서서 일 거리를 주고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한다’면서 직원들 탓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생각은 이는 의사 보직자들이 자처한 부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행정직원들 입장에서는 2~3년마다 바뀌는 보직 교수님들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고, 대책없이 아이디어만 던져 놓으면서

이를 구체화 하는 과정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를 방해하기도 하는 일을 겪다보니,

주도적으로 일하기 보다는 수동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보직 교수님들이  첫 회의부터 본인이그동안 생각해온, 병원에 대한 불만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잔뜩 늘어 놓기 보다는

해당 업무를 오래 맡아와 현안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는 행정직원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그들의 생각이 올바른 방향으로 구체화되고 병원 경영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좋은 관리자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직원들의 관성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1번에서 이야기한 것의 결과일 수도 있고

병원 조직 자체가 큰 변화없는 공기업(?) 같은 분위기가 있다 보니

관성에 젖은 행정 직원들, 특히 중간 관리자들이 제법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조직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관성에 젖어 새로운 것을 들이는데 저항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제 짦은 경험으로는 간호직원들은 그런 경우가 적은 것 같고

행정직원들이 그런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일할 때 새로 병원 건물을 짓기 위한 기획작업을 담당한 적이 있는데

소위 ‘미래형 병원’으로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때 당시, 이런 저런 기획안을 내고 다른 부서들과 실현 가능성, 타당성을 검토했는데

새병원을 짓기까지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피드백을 받고 접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그 시스템을 도입한 병원이 나왔습니다.

참고로 삼성서울병원의 새 건물은 아직 착공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할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그 분야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해서 스스로 전문가가 되는 것도 방법이고

외부의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자문을 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관리자가 꼭 필요한 것이고 판단한다면

담당 행정직원에게 타당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고 되는 것을 전제로 실현 방안을 짜오라고

딱 자라서 이야기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사실 이 마지막 방법은 너무 자주 쓰면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정말 중요한 아이디어에 대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짜오라고

 

3. 분석 자료를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보직교수님들이 들어가는 원내 주요 회의에는 다양한 부서가 만들어낸 자료들이 보고됩니다.

특히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다 보니 경영 실적과 부진한 원인에 대한 자료들이 보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료를 훤히 들여다 보는 실무자 혹은 중간 관리자가 의도적/비의도적으로 장난을 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식의 자료를 직접 정리해본 적이 없는 보직 교수들은 그런 장난을 찾아내기가 힘듭니다.

 

제가 생각하는 수상쩍은 기색을 발견해내는 방법은

데이터를 정리한 기준을 유심히 보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1) 기간을 나누는 기준이 별다른 이유없이/갑자기 바뀔 때는 정확한 이유를 물어보고

원래 기준대로 자료를 다시 정리하도록 한다. 기준이 바뀌지 않았다고 해도 주/월/분기 등

일반적이지 않은 기준으로 자료가 나오는 경우, 일반적인 기준으로 재정리하도록 한다.

->  주단위로 분석하던 자료를 갑자기 월 단위로 분석한다던지, 매달 1일을 기준으로 분석하다가

매달 15일을 기준으로 분석한다던지 하는 경우, 무엇인가를 숨기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이외에도 진료과 단위, 환자의 주소나 나이를 구분하는 단위 등 자료를 분석하는 다양한 기준을

눈여겨 보고 뭔가 일반적이지 않거나 뚜렷한 이유없기 갑자기 기준이 바뀌면 재정리하도록 해야합니다.

 

4. 미래 예측 모델을 볼 때, 결과치만 보지말고 가정을 점검하라

 

저의 경우 새병원 건물을 짓는 작업때문에 5~6년 후의 수요를 예측하는 작업을 해야했습니다.

최근 몇년간 민자 고속도로 건설 시에 수요 예측이 잘못되어 엄청난 혈세를 낭비한다는 기사가

자주 실리는 것처럼 수요 예측은 그 자체로도 정확하기 힘들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더더욱 부정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욕먹게될 가능성이 높은 일이지만 미래 사업을 기획하기 위한 방향을 잡기 위해서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인 셈입니다.

 

그런 예측을 하기 위해서는 모델을 만들어야 하고 모델에는 수많은 가정이 들어가게 되니다.

향후 환자 수 증가율이라던지, 외래 환자와 입원 환자의 비율 같은 다양한 가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가정이 쌓인 결과물이 예측치기 때문에 예측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가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보직 교수님들이 예측 모델을 보고받을 때 결과에만 꽂혀서

결과치가 마음에 들면 끄덕끄덕하면서 넘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갖은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발표 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중요한 가정에 대한 공유와 합의입니다.

그런 가정치는 아무런 근거 없이 아무 숫자나 쓰는게 아닙니다.

궁색한 경우도 있지만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숫자라던지, 유사한 업종에서 나온 숫자라던지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이런 숫자가 3%에서 4%로 1%만 올라가도 결과치는 크게 변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가정에 대한 논의는 없이 결과치가 맞다 틀리다를 가지고 논의해서는

건설적인 협의를 할 수가 없습니다.

 

5. 의료 관련 뉴스를 지속적으로 체크하라

 

어찌보면 기본 중의 기본인데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원 홍보실에서 그 병원과 관련된 기사를 정리해서 매일 이메일로 보내주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홍보실 자료는 그야말로 병원의 홍보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각종 의료 보건 정책의 변화, 해외 병원 사례 등입니다.

 

국내의 주요 의료 뉴스 사이트를 모니터링하는 정도는 손쉽게 할 수 있지만

이정도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더 욕심을 내자면 외국의 관련 사이트 혹은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보직 교수님들이 진료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워낙 바빠서 따로 시간을 내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병원 기획실 같은 곳에 담당 직원을 정해서

매일 혹은 적어도 매주 그런 뉴스들을 모니터링하고

기획실을 포함한 원내 모든 보직 교수에게 정기적으로 이메일 뉴스레터를 보내는 것도

고려할만 합니다.

 

6. 배움의 기회를 가지라

 

대학병원 교수라면 국내외 학회에 참석하면서 전공 분야에 대한 최신 지견을 업데이트하고

동료들로부터 최근 뜨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보직자로서의 역량을 갖추는 데에도 비슷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부응하여 대형병원들을 중심으로 보직 교수들을 위한 자체 교육 과정을 마련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커리큘럼을 보면 막연하거나 뜬구름 잡는 경우가 많고

당장 실무에 어떻게 적용해야할 지 감을 잡기 힘듭니다.

 

저는 해외 학회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American College of Healthcare Executive (ACHE)와

American College of Physician Executive (ACPE)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전자는 보건의료산업의 경영자 전반을 위한 것이고

후자는 의사이면서 경영자로 이하는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미국 병원 경영자들의 profile에 보면 본인의 이름 뒤에 각종 학위(MD, PhD…)를 늘어놓으면서

FACHE라는 생소한 말이 쓰여있는 경우가 있는데 Fellow of ACHE라는 뜻입니다.

ACHE 학회 회원이면서 학회 몇번 이상 참석, 교육 점수 획득 등의 자격 조건을 획득하면 주는 것입니다.

 

ACHE 주로 3월에, ACPE는 주로 4월에 메인 학회가 열리며, 보건의료분야 경영 전반에 대한 다양한

주제의 강의와 세미나가 열립니다.

이외에도 연중 다양한 교육 과정이 개설됩니다.

삼성서울병원에 있을 때 매년 우수 직원을 뽑아서 해외 학회 참석 및 유수 병원 벤치마킹 기회를 주는데

그 분들이 ACHE에 참석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보직 교수님들이 참여하시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부터 생각하던 것인데

막상 글로 정리하려니 빠진 것도 있는 것 같고 이런 이야기까지 쓰는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막연한, 이론적인 이야기들보다 오히려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합니다.

 

정리하자면, 훌륭한 의사/연구자/교육자가 되기 위해서 수십년을 노력한 것 처럼

좋은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도 부단하게 노력을 하셔야 합니다.

보직은 병원에서 본인의 위치를 인정받은 것에 대한 일종의 ‘훈장’이 아니며

진료, 환자, 병원에 기여할 수 있는 또다른 방법이고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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