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5 병원과 2위권 병원들 간의 격차는 왜 벌어졌을까?

Big4 혹은 Big5 병원들은 2000년대부터 매우 빠르게 규모를 키워왔습니다.

2012년 한겨례 21잡지는 의료계 무한 포식자, 5마리 황소 개구리 라는 제목으로

제목만 들어도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사를 싣기도 했습니다.

기사의 아래쪽에 나오는 그림을 보면 Big5가 다른 상급종합병원에 비해서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 지를 실감나게 알수 있습니다.

 

과연 Big5 병원들은 왜 이렇게 빠르게 규모를 키운 것일까요?

또, Big5 병원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 소위 2위권 병원들은 왜 따라가지 않았던 것일까요?

Big5 병원들의 내부적 상황과 경쟁 상황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보고

2위권 병원들의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Big5 병원들 내부적으로 확장 여부를 고민하면서 어떤 것을 고려했을까요?

우선 떠오르는 것은 ‘규모의 경제’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 규모가 커지는 경우 오히려 비효율이 늘어나 ‘규모의 비경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서비스업에서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조직 구조가 복잡해지고 조직 내부 의사 소통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따라서 기계나 시설, 장비를 통해서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제조업에 비해서

규모의 비경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나라와 시스템이 달라서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영국의 NHS를 연구한 자료를 보면 200~400병상 규모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과가 있습니다.

 

이외에 생각할 수 있는 요인은

1. 우리나라 국민들이 큰 병원이 더 좋은 병원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2. 병원 규모가 커서 더 많은 환자를 받아야 더 세분화, 전문화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3. 더욱 다양한 환자를 볼 수 있어서 (희귀한 사례를 많이 본다던지…) 의료진의 전문성이 높아진다.

는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에는 Big5 병원들 상호간의 경쟁 관계를 놓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위의 한겨레21 기사에서는 의료군비경쟁 (medical arms race)라는 개념이 소개됩니다.

1960~1990년대 미국의 의료비가 크게 증가하게된 것이

미국의 병원들이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더 좋은 시설과 장비를 갖추기 위한

일종의 군비 경쟁때문이라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료군비경쟁을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게임이론으로도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이하의 내용은 보건의료경제학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설명을 간단히 하기 위해서 두개의 병원만이 서로 경쟁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만약 두 병원이 모두 현재의 규모를 유지한다면

추가 투자가 필요없고 두 병원 모두 현재와 같은 환자 선호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한 병원만이 확장하고 다른 병원은 규모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더 큰 병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더 많은 환자들이 그쪽 병원을 찾게되면서

확장한 병원은 현재보다 이득을 보고, 유지한 병원은 손해를 보게됩니다.

모두 확장을 한다면 둘다 투자를 했기 때문에 비용은 들어갔지만

두병원에 대한 선호도는 지금과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두 병원 모두 약간의 손해를 보게됩니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습니다.

2×2 표에 나오는 숫자는 각각 A병원과 B병원의 이익을 의미합니다.

B병원
확장 유지
A병원 확장 90,  90 (A, B병원) 120,  80
유지 80,  120 100,  100

위의 그림을 보면 두 병원이 함께 현재의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두병원이 그렇게 담합을 한다면 굳이 확장을 할 이유가 없지만

서로 경쟁하는 사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A병원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B병원이 확장을 선택한다면 A병원은 확장을 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90>80으로 이득이 큼)

B병원이 유지를 선택해도 A병원은 확장을 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120>100으로 이득이 큼)

즉, A병원 입장에서는 B병원의 선택과 무관하게 확장을 하는 것이 이득입니다.

B병원 입장에서도 동일한 일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두 병원의 경쟁 관계를 생각한다면 두 병원 모두 확장을 하는 것이 이득인 셈입니다.

즉, 두병원이 함께 현재의 규모를 유지 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경쟁을 하다 보니 모두 확장을 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는 셈입니다.

이는 게임이론에 나오는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상황입니다.

 

하나의 유효한 설명이지만 우리나라 현실에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Big5 병원들 간에 서로 환자를 뺏고 뺏기는 경쟁 관계도 있지만

Big5 병원들이 이외의 병원들로 부터 환자를 뺏어오는 것부분도 크기 때문입니다.

즉 확장을 했을때  어느 정도까지는 다른 병원들로부터 환자를 뺏어올 수 있어서

확장으로 인한 인지도 상승과 더 많은 환자 유치를 통해서 현재 상태를 유지할 때보다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유지를 한다고 해도 약간의 인지도 저하를 제외하고는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할 수있습니다.

이를 위와 같은 방식으로 정리한다면 아래와 같습니다.

B병원
확장 유지
A병원 확장 115,  115 120,  95
유지 95,  120 100,  100

즉, 두병원이 담합을 하거나 경쟁하는 경우 모두 확장을 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에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아니며 무조건 확장하는 것이 답인 셈입니다.

물론 제가 그런 매트릭스는 순수하게 가정으로 만들어본 것에 불과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 같은 규모의 비경제 효과가 있기때문에

Big5병원들이 확장을 했을 때 실제 이익이 높아졌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위의 매트릭스만만 놓고 보면 Big5 병원들은 우리나라의 중환들을 모두 끌어들일 때까지

무한히 확장하는 것이 이득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삼성서울병원을 제외하고는 Big5 병원들의 확장 계획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에 대해서 Big5 병원 병원장님들은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실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마 그 분들이 말하는 내실이 위에서 설명한 ‘규모의 비경제’와 상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Big5 병원들이 무한히 환자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생각보다 병원을 선택할 때 거리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특히 의료 소비자가 병원을 선택할 때 생각보다 거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연보에 지역별로 신환 수와 입원 환자 수가 나와있어서 이를 주민의 숫자로 나누어

권역별로 아산병원 방문 빈도를 구해봤습니다.

권역별 아산병원 방문 빈도
권역별 아산병원 방문 빈도

1차 진료권역은 송파구에 인접한 지역으로 강동구, 광진구, 강남구를 말하며

2차 진료권역은 1차 진료권역에 인접한 지역을 말합니다.

송파구에서 1차 진료권역으로 갈 때 빈도가 절반으로 줄고  2차 진료권역으로 가면 다시 절반으로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전체 평균과 비교하면 송파구민이 아산병원을 방문하는 빈도는 10배 가깝게 높습니다.

입원 빈도도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송파구의 감기, 고혈압 외래환자가 모두 아산병원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위의 자료를 보면 질환 중증도에 따라서 차이가 나기는 하겠지만

사람들이 병원을 고를 때 생각보다 거주지로부터의 거리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Big5병원들이 경쟁적으로 확장에 나서는 동안

소위 2위권 병원들이 별다른 확장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주위 분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아주대병원, 고대안암병원, 고대구로병원, 이대목동병원, 한양대병원이 소위 2위권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규모의 비경제효과를 미리 내다 보고 작지만 실속있는 병원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Big5가 성장하면서 2위권 병원들의 성장이 정체되었으며

이들 병원들보다 아래급이었다고 할 수 있는 건국대병원이 Big5에서도 가장 큰 아산병원에서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신축하고나서 성장한 것을 보면 2위권 병원 모두가 성장에 나서지 않은 것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Big5 병원들이 확장하는 시기에 이들이 함께 규모를 키웠다면

아무리 Big5 라고 해도 확장한 병상을 쉽게 채우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Big5병원들은 확장여부 및 확장 규모를 고민하면서 2위권 병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고민했어야 합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들 2위권 병원들은 여러가지 사정때문에 확정에 나설 수 없었으며

그런 사정들은 병원 외부인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을 내용이기 때문에

Big5병원들은 자신들이 확장을 해도 적어도 2위권 병원들이 따라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들 병원들이 Big5의 확장에 따라 나서지 못한 원인에 대해서 주변 지인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서 이름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도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위의 병원들은 사립대병원 소속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1. 대학 재단이 투자 여력이 없거나 (아주대병원의 경우. 대우그룹 해체 이후 재단 지원이 거의 없음)

2. 대학 재단이 병원 혹은 의과대학에 투자하는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 (나머지 병원들)

이 아닌가 합니다.

2번을 병원 별로 살펴보면

고대는 원래 의과대학이 없다가 1971년에 우석대 의과대학을 인수하였기 때문에

대학 내에서 의과대학의 위상이 낮기 때문에 큰 투자를 끌어내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대 역시 대학 내에서 병원의 위상이 낮은 것 같습니다.

큰 돈을 들여 이대 목동 병원을 지었으나 생각보다 성과가 낮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과가 낮았던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이대병원 외과계열의 위상이 낮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대가 여자대학교이다 보니

내과계 진료과에는 이대 출신 교수들이 많은 반면 외과계 진료과는 타고 출신 교수들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외과 교수들의 로열티가 낮아서 더 좋은 자리가 나면 쉽게 자리를 옮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서울대병원 바로 옆에 위치했던 이대 동대문 병원이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아야 했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대는  2011년에 마곡지구 땅을 구입하면서 제2병원 신축에 나섰습니다.

이는 재단이 병원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마곡지구에 삼성이나 아산병원이 진출하는 경우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대목동병원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기잠식효과 (cannnibalization)을 감수하고 어쩔 수 없이 신축에 나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병원을 신축하는 과정을 보면 이대 재단은 병원에 큰 투자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데일리메디에 실린 이대, 6000억 소요 ‘마곡병원 재정 플랜’ 완료 기사를 보면

병원 건립에 총 6000억원이 소요되는데 부지를 함께 사용하는 의과대학이 484억원을 내고

병원이 1265억원을 냈으며 나머지 4300억원을 차입한다고 합니다.

이화의료원으로서는 대학 재단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규모확장에 나선 상황으로 보입니다.

전반적인 경기도 별로 좋지 않고  의료계 상황은 더 나쁘고 상당기간 호전될 가능성이 없어보이는데

이렇게 큰 차입 부담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 지 주목이 됩니다.

 

한양대병원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학이 원래 공대가 강하고 해서

병원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Big5 병원들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똑같은 사립대이지만  연세대의 경우 연희전문과 세브란스의 합병으로 생겨난 역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의과대학과 병원이 상당한 자율권을 가지고 있고

카톨릭대의 경우, 종교 재단의 특성 상 의료 사업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대병원은 종로에 위치해서 공간이 부족했지만 원래 규모가 큰 편에다가

서울대학교라는 위상으로 인해서 큰 확장 없이도 그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별개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는 것처럼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현대와 삼성이라는 든든한 물주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고 위상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Big5 병원들의 확장 과정을 살펴보면서 상호간 및 이들과 2위권 병원들간의 경쟁 상황이

Big5 병원들의 확장 여부 및 확장 규모에 대한 의사 결정에 미쳤을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제 생각으로 Big5 병원들은 당분간 크게 확장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료계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병원 선택 시에 생각보다 거리의 영향이 크다는 점

그리고 이대 마곡 병원 신축 처럼 2위권 병원들 중 일부가 뒤늦게라고 확장에 나섰고

그 외의 지역 거점 병원들 상당수가 확장했거나 확장할 계획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확장은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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